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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조선일보 인터뷰 기사) 추석에 성묘 안 가느냐고요? 부모님 모신 곳이 일터인걸요. 관리자 6,927 2010.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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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공원 근무 31년 이명호씨
지난 19일 오전 8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의 공원묘지인 용인공원 북쪽 능선에서 모자와 마스크를 쓴 직원 15명이 예초기를 메고 벌초를 하고 있었다. 작업조장 이명호(55)씨가 "10시 넘으면 성묘객들이 오시는데 서두릅시다"고 독려하자 직원들 움직임이 빨라졌다. 직원이 '윙' 소리를 내는 예초기를 3~4차례 좌우로 움직이자 가로 1.5m, 세로 2.5m 직사각형 묘 위로 한 뼘 이상 자란 풀이 말끔히 정리됐다.

이 용인공원에서 1980년부터 31년째 묘지관리를 하는 이씨는 단 한 번도 추석 명절을 쉬지 못했다. 설에는 성묘객이 많지 않아 간간이 쉬었지만, 추석 연휴는 1년 중 가장 바쁜 때여서 쉴 엄두도 못 냈다.
 

평소 성묘객은 하루 평균 200~300명, 주말엔 500~600명인데, 추석연휴 기간에는 8000~1만명에 이른다. 이씨는 "추석에 쉬기는커녕 해 떠서 해질 때까지 숨 돌릴 틈이 없다"며 모자를 벗어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는 이날도 오전 5시에 나와 막바지 벌초작업을 했다.

이씨는 "주변에서 다른 사람들 성묘 돕느라 추석에 가족들과 지내지 못해 어떡하느냐고 안타까워하지만 나에게 추석 근무는 성묘나 다름없다"고 했다. 이씨 부친은 15년 전, 모친은 12년 전 돌아가셨고, 이씨는 양친(兩親)을 자기가 일하는 용인공원에 합장했다. 이씨는 "집안에 묘 쓸 땅이 있었지만 내 일터에 부모님을 모시고 싶어 이곳을 택했다"고 했다.

"부모님 생전에는 다른 사람들 성묘 돕느라 추석 때 인사를 못 드리고 해서 항상 마음에 짐이 됐지요. 돌아가신 다음이라도 제가 부모님 묘를 관리하니 홀가분합니다."

이씨는 지난 9월 초 양친 묘를 벌초했고, 지난 16일 미리 가족들과 성묘했다. 이씨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추석을 함께 보내지 못하는 나에게 원망도 많이 했는데, 장성한 아들이 '다른 이의 슬픔을 보듬어주는 아버지 직업이 자랑스럽다'고 말해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이씨는 추석 때 성묘객들이 말끔하게 정리된 분묘를 보고 다가와 "묘 관리 잘해줘서 고맙다"며 인사할 때 뿌듯하다고 했다. 그는 "일은 힘들지만, 자부심을 느낀다"며 활짝 웃었다.

2010.09.21 김충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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