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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헤럴드경제 인터뷰] 생의 마지막 '그 모든 설계'... 죽음, 금융을 만나다 관리자 1,014 2022.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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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묘문화 혁신...김동균 '용인공원' 이사장

떠난 분에 위로받고 새 에너지 얻는 공간

장례식-발인-사망-상속이 하나로 연결

하나은행과 손잡고 '봉안플랜신탁'선봬

본인·가족 유고 때 신탁액 장지비용 지급

남은 금액은 법정 상속하도록 설계

두 달 만에 100건 계약...금융사들 주목



죽음은 언제나 슬프다. 소중한 존재를 보내는 데는 적당한 때라는 것도, 적절한 방법이란 것도 없다. 그렇지만 이 무거운 단어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각 국가나 문화마다 천차만별이다. 배우 히스레저 장례식을 기억하는가. 지인들은 그가 제일 좋아했던 바다에서 뛰어놀며 마음껏 그를 그리워했다. 이 풍경은 죽음을 터부시하며 기피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잘 보내는 법'에 대한 고민을 하게 했다.

죽음을 슬픔에만 매몰되지 않게 시도하는 곳이 있다. 남은 자와 떠난 자들이 만나는 곳, 고인의 마지막 집이 안치돼있는 재단법인 용인공원이 그렇다. 1975년 출발한 용인공원은 국내 최대 규모로 공원묘지와 봉안당을 함께 보유 중이다. 지난 10년간 공들여 문을 연 실내 봉안당 아너스톤은 2만5000기 이상의 봉안함을 안치할 수 있다.

김동균 용인공원 이사장(사진)은 "발인날을 제외하고 사람들이 용인공원을 방문하는 이유는 먼저 떠난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다"며 "남은 자들이 고인을 추억하며 삶의 방향을 정비할 수 있는 '소생의 공간'으로 이 곳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봉안시설을 채광이 이루어지도록 시공했고, 로비층 전체를 호텔식으로 꾸민 것도 이 때문이다. 쾌적함을 강조하기 위해 당초 5만기로 설계됐던 봉안당을 절반으로 줄였다. 김 이사장은 "고인 입장에서는 아파트보다 더 오래살 곳 아니냐"며 "결혼 못지않게 장례에도 엄청난 비용이 드는데, 남은 가족들과 고인을 위해서라도 다른 장묘업체와 다른 분위기를 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용인공원에서는 수목장 중심의 자연장지, 봉안·매장묘, 봉안당 등 장사법에서 규정한 5가지 형태의 장지 외에 각종 문화행사가 열린다. 박목월 시인 탄생 100주년때에는 묘 앞에 정원을 만들고, 아들인 박동규 교수가 시 낭송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고(故) 강수연 배우 1주기가 되는 내년 5월에는 추모를 위한 행사도 조심스럽게 타진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죽음은 삶의 한가운데 있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부모님 등 가까운 사람이 떠난 뒤에야 죽음을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각종 문화행사 등을 통해 죽음을 가깝게 받아들이고 미리 준비하는 문화가 정착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시대의 지성으로 꼽히는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은 미래 세대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전해주기 위해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영상과 책으로 준비하기도 했다.

이 연장선상에서 용인공원은 올해 파격적인 시도를 했다. 하나은행과 손잡고 '봉안플랜신탁'을 선보인 것이다. 장묘업체와 금융사라는 이질적인 두 분야의 결합에 시장에서는 기대 반, 우려 반 시선을 보냈다. 하나은행이 2010년부터 금융권 최초로 유언대용신탁을 시작으로 신탁 서비스는 확장해왔다고는 하지만 내부에서도 새로운 실험에 대해 의견이 분분할 정도였다. 하나은행 내에서도 상품위원회 등 1년이 넘는 기간을 준비해왔다.

봉안플랜신탁은 본인이나 가족 유고 시 신탁액을 아너스톤에 장지 비용으로 지급하고 남은 금액은 법정 상속하도록 설계된 상품이다. 봉안당 시설 및 상조 상품 이용 시 20% 할인, 상속·증여·후견 컨설팅 서비스 등이 추가로 제공된다. 입출금이 자유롭고 최소 1만원에서 최대 1억원까지 가입할 수 있다. 신탁 특성상 계약자가 신탁재산으로 장지 비용 외에 남은 금액 처분 방법도 필요하다면 정할 수 있다.

김 이사장은 "국내 모 기업과 40대 이상을 대상으로 설문을 했는데, 전체 응답자 60% 이상이 장지를 미리 준비해야하고, 이들 절반 이상이 본인을 위해 직접 장지를 마련해야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적잖이 놀랐다"며 "생애 마지막까지 신탁을 통해 '웰빙'을 '웰다잉'으로 관통시키겠다는 콘셉으로 마련됐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가족들이 사후에도 함께 하기위해 한쪽 벽면을 모두 계약하겠다는 경우도 종종 나타나고 있다.

봉안플랜신탁은 첫날부터 문의가 이어진 뒤, 출시 두 달만에 100건이 넘는 계약이 이뤄졌다. 최근 봉안당이 거래되는 형태를 보더라도 15% 정도가 미래를 대비한 사전 고객이고, 이 가운데 본인용으로 거래하는 것이 상당수다. 이처럼 스스로 사후를 준비하는 추세가 급격히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봉안플랜신탁의 성공을 시작으로 다른 금융사들의 문의도 이어지고 있다. 이미 은행 뿐 아니라 보험사, 로펌 등 굵직한 곳들이 용인공원과 협업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실제 김 이사장과 인터뷰를 하던 당일에도 보험사 자산관리(WM) 담당 임원이 자사 초고액자산가 및 보험설계사(FC)를 대상으로 신탁 등을 연계한 금융상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논의하고 갔다.

살아생전 관리는 금융사들이 앞장서서 역할을 하고, 사후는 용인공원 할 수 있는 일을 찾자는데 교감이 된 상태다. 각 기관과의 구체적인 역할이 나눠지는대로 실질적인 협업, 상품화 등 구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김 이사장은 "고객들 입장에서는 생전의 자금관리부터 장례식, 발인, 사망 후 상속까지 모든 과정이 연결돼있는 하나의 선(線)으로 느껴지지 않느냐"며 "죽음을 미리 준비해야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장될 것으로 보고 전 국민들 상대로 하는 기관들과 '웰다잉' 시대를 함께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헤럴드경제 (n.news.naver.com/article/016/0002042159?sid=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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